한사람교회 칼럼

“다 쓰지 않는 상”(5. 3. 2020.)

서창희 2020. 4. 29. 09:54

“다 쓰지 않는 상”
(5. 3. 2020.)

고린도전서 9:18

 

권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 쓸 권리가 있다. 능력이 있으면 하고싶은 일을 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제외하고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 먹고 누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시는 분이다. 사람은 분명 누릴 권리가 있는 존재이다.

 

사람이 권리를 스스로 제한할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질 때이다. 자기가 쓸 돈을 연인에게 쓴다. 자기가 먹을 것을 자녀에게 준다. 왜 그러한가? 권리보다 큰 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권리를 주신다. 그런데 권리보다 더 큰 것도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기쁨을 주신다.

 

바울이 자신은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다 쓰지 않는 상’이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린도전서 9:18) 바울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쓰지 않았다. 아쉽다고 해야 하는데. 상 받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복음을 위해, 다 있었는데, 다 쓰지 않은 것이다.

 

권리를 위해 살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리를 주셨다. 모든 권리를 포기하심으로, 영생을 누리를 권리를 주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그 십자가를 묵상할 때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리를 빼앗아가시는 분이 아니다. 영생을 소유했음에도 현실의 삶에 제한된 환경은 언제나 이유가 있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권리보다 큰 것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놀고 싶고, 쓰고 싶고, 쉬고 싶다. 권리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렇게 살도록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한 가지를 더 깨달아야 한다. 권리를 넘어 구원하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다 있어도, 다 쓰지 않을 수 있다. 다 쓰지 않는 상을 추구하라. 그것이 멋있는 길이다.

 

[1] 능력과 권리가 있어서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어떤 때 부러움을 느낍니까?

 

[2-3] 사람이 권리를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고린도전서 9장 18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은 왜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습니까?

 

[4-5]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무엇입니까? 다 주셨음에도 제한된 환경에 두시거나, 요구하시는 일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권리보다 큰 것을 추구하기 위해, 다 쓰지 않아야 할 내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