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하지 않는 것”(3. 22. 2020.)
“끝까지 하지 않는 것”
(3. 22. 2020.)
요나 1:17-2:1
사람의 행동은 충격이 와야 바뀐다. 성적표를 받아봐야 공부를 시작한다. 허리에 잡히는 살을 보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한다. 평소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고난을 주시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살면서 고집스러운 내 자신이 변하려면, 고난과 충격은 정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기도이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무시한다. 끝까지 무시한다. 하나님은 고집스러운 요나의 행동을 고치시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충격을 주시기 위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요나 1:17)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고치시려는 것은 단순한 요나의 행동이 아니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후, 요나서에서 처음으로 기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2:1) 하나님의 명령을 이미 알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이미 들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요나는 자신의 내면과 하나님의 음성을 두고 기도로 깊게 씨름하지 않았다. 요나가 끝까지 하지 않는 것, 하나님은 요나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원하셨다.
여기저기서 위기의 소리가 들려온다. 함께 안타까워 하고, 삶도 돌아보고, 안전도 챙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기도하지 않는다. 명심하라. 당신이 기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기도가 변곡점이다. 기도가 터닝포인트이다. 끝까지 가지 말고, 기도로 삶의 물줄기를 바꾸라.
예수님이 나의 삶 대신 삶의 끝까지 가셨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곳에서 기도하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복음 15:34) 끝에서 기도를 응답 받지 못하셨다. 그것이 바로 나의 운명이었다. 내 대신 삶의 끝에서 응답 받지 못하셨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내 삶의 끝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로로 언제나 나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삶의 끝을 보기 전에 주를 향해 기도하라. 물고기 뱃속에서도 살아남게 될 것이다.
[1]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충격적인 사건, 경험을 통해 나의 행동과 생각이 바뀐 경험이 있습니까? 삶에 충격과 고난은 왜 필요한 것일까요?
[2-4] 요나서 1장 17절을 읽어 봅시다. 고집을 부리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충격을 주십니까? 요나서 2장 1절을 읽어봅시다. 충격을 통해 끝까지 변하지 않다가, 변하게 된 요나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5] 내 삶의 고난과 충격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첫번째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삶의 끝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경험하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내가 기도를 시작해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