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은 예수님이다”(1. 18. 2015)
“균형은 예수님이다”
(1. 18. 2015)
사람은 ‘궁극의 문제 해결방법’을 찾는다. 한 나라는 어떻게 통치되어야할까?독재와 민주를 보자. 독재는 독재자가 똑똑하면 잘 살 수 있지만, 결정을 잘못하면 전체가 어려워진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다같이 산으로” 갈 수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로 갔다. 민주주의는 내용이 어떻든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판단을 잘못하면, 이것도 “다같이 산으로” 간다. 통치에 "완벽한 균형"을 가져오는 방법은 없다. 그나마 나은 것이 있을 뿐이다. 기억하라. 방법에 완벽한 균형은 없다.
경제학의 흐름엔 시카고 학파와 케인즈 학파가 있다. 시카고 학파는 시장을 내버려 두면 시장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미국은 1920년대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다. 1차대전 덕분에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서 제품을 계속 샀고, 가격은 계속 올랐다. 규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월급으로 사기엔 가격이 너무 비싸졌어”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가격은 폭락했다. 그것이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그것이 케인즈다. 케인즈는 정부가 일단 공짜 돈을 줘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게 만들면’ 경제가 다시 건강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먹혔다. 한참 잘 나갔다. 그러나 케인즈의 방법으로도 불황이 왔다. 왜?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였다. 오일쇼크였다. 석유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르니, ‘정부가 개입해봐야 소용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 기억하라. “그나마 나은 방법”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균형을 주지 못한다.
궁극의 '방법'을 찾아서 균형을 잡겠다는 시도를 그치라. 인간의 방법엔 궁극이 없다. 방법은 늘 타이밍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법과 타이밍 그 두 가지를 모두 완벽히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로새서 2:3) 균형은 “그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 있다. 내가 믿는 나라, 내가 믿는 정책, 내가 믿는 학교, 내가 믿는 사람을 의지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방법에 예수님을 초대하면 타이밍이 맞는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의 정치사상, 하나의 해결책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시도를 우려한다. 인간의 모든 방법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자주 가서 영어듣기 공부를 하던 사이트가 있었다.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그 곳밖에 없었다. 난 그것이 궁극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모든 다른 학습 사이트를 무시했다. 어느 날, 사이트가 망했다. 인생에 절망을 맛보았다. 하나님께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물었다. 치열하게 기도한 후, 알게된 다른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다. 콘텐츠를 살펴보니, 오히려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내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 수준을 아셨다. 타이밍에 맞게 방법을 변화시켜주셨다. 방법과 타이밍에 겸손해지니, 예수님은 균형을 선물로 주셨다. 우리의 방법은 예수님의 인도하시는 타이밍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야한다.
예수님은 균형이 완벽하신 하나님이시다. 100% 하나님이시지만 100%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한 사역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사자이며 양이다. 그의 주장은 엄청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코 오만하지 않다. 가장 약하고 상한 자들도 얼마든지 그에게 다가갈 수 있지만, 그는 타락하고 힘 있는 자들 앞에서는 완전히 대담하고 맹렬하다. 그는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고, 강하지만 가혹하지 않다. 겸손하지만 조금도 자신감이 부족하지 않다. 머뭇거리지 않는 권위가 있지만, 자기도취의 흔적은 없다. 거룩함이 있지만 친근하다.” 예수님은 균형이 완벽한 분이셨다.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완벽히 아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떠나 궁극적 방법을 찾지 말라. 그 이론과 그 노하우로는 예수님의 완벽한 균형을 담아낼 수 없다. 그 분을 의지할 때 이론과 정책은 균형을 찾는다. 타이밍을 잡는다. 예수님 안에 방법의 완성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라. “그 방법”이 아니라 “그 분”을 찾으라. 삶의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균형은 예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