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승리의 추구”(5. 16. 2021.)
“구조적 승리의 추구”
(5. 16. 2021.)
창세기 39:10-12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다. 열심히 살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삶의 많은 것이 무너져 있고, 열매 맺지 못했다. 왜 그런가? 구조적인 악에 빠지면 그렇다.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건강에 전혀 신경을 못썼다. 쉴 새 없이 바쁘다 보니, 기도로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 구조가 나쁘면, 가만히만 살아도 균형이 무너진다.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일에는 구조적인 악이 있었다. 자꾸 주인집 아내가 자신을 유혹한 것이다.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창세기 39:7) 집 청소를 할 때마다 자꾸 옆에서 유혹한다. 요셉은 어떻게 유혹을 이겼을까? 요셉은 구조적 승리를 추구했다.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10절),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11절) 승리의 원인은 구조에 있었다. (1) 함께 있지 않았다, (2)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승리했다.
삶을 살아갈 때 어쩔 수 없이 연약해지고, 어쩔 수 없이 실패하는 구조적인 악이 있는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피곤해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라. 너무 혼자 있기만 좋아하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라. 건강도, 성과도, 재능도, 상당부분 구조에서 나온다.
사람이 절대 구조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무리 승리하는 구조를 짜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구조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영적인 길이 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셨음을 믿는 것이다. 나는 절대 죽음 앞에 승리할 수 없는 존재였으나, 예수님 때문에 영적인 승리를 얻었다. 이것을 믿는다면 겸손하게 다짐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예수님이 감당해 주셨다. 이 땅의 나머지 사명은, 피할 수 있는 죄악 속에서 구조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죽음 앞에 연약한 존재였을 뿐인 나를 주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이 땅의 남은 구조적인 악 속에 나는 괜찮다고, 나는 이길 수 있다고 교만하게 행동하지 말라. 아직 악의 권세가 살아 있다. 구조적으로 나를 죽인다. 구조적 승리를 추구하라. 신자의 남은 사명이다.
[1] 모든 것을 열심히, 진정성 있게 하지만, 내 삶은 쉽게 균형을 잃고, 실패합니다. 구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 속에 빠진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39장 7절, 10절, 11절을 읽어봅시다. 요셉이 자신의 삶 속에 가진 구조적인 한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죄악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4-5] 사람이 구조적으로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일한 승리의 구조는 무엇입니까? 내가 영적인 승리를 소유했음을 믿고, 이 땅에서 남은 악에 맞서 구조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