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고백해도 살아남는 세계”(9. 15. 2019.)

서창희 2019. 9. 9. 16:32

“고백해도 살아남는 세계
(9. 15. 2019.)

사무엘하 12:1-15

 

잘하고, 틀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시대이다. 그래서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 다들 나를 무시하고 매장하기 때문이다. 박박 우기고, 모른 척 발뺌하는 사람들이 한심하면서도, 나도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다윗이 남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범죄한다. 숨기고 모른척했다. 선지자가 나타나서 책망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사무엘하 12:7) 발각되니까 당황했다. 그러나 다윗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삶을 계속 살아간다. 나의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선을 행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었다.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사무엘하 7:1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실수와 실패의 때에, 정직하게 고백해도 내 삶에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적용은 두 방향이다. 첫째, 하나님께 내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하나님을 거부했던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억지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회개를 시키신다는 것은, 나를 죽이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나를 살려주시겠다는 뜻이다. 숨기지 말고 회개하라. 살아남을 것이다.

 

둘째, 일상에서 실수와 실패의 때에 담담하게 말하라. 결정적으로 나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성과와, 나의 미래와, 나를 향한 평가가 나빠질까봐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핑계를 대고 얼버무린다. 그렇지 않다. 죄인된 우리는 언제나 실수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일 때 정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 되라. 억지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고백해도 살아남는다는 확신 때문에, 고백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면 심판 받고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서 무죄를 고백하셨는데도 심판받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가복음 15:34) 죄 있는 우리의 고백의 대가는 주님이 십자가로 가져가시고, 죄 없는 그분의 순종의 대가는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정직하게 고백할 때에도,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이미지, 평판, 브랜딩, 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들 속으로는 똑같으면서 자기들만 의로운 척 살아가는 시대에 지친다. 죄를 고백해도 나를 지키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담담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을 기대한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1] 잘못과 실수가 뻔히 보임에도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2-4] 사무엘하 12:1-15를 읽어봅시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지적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무엘하 7장 13절을 읽어봅시다. 담담히 자기 죄를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5-6]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면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해도 죽지 않는 이유는 누구의 공로 때문입니까? (1) 하나님 앞에서, (2) 사람들 앞에서 나의 실수와 실패를 고백하는 자세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그리고 (3) 나에게 실수와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