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고깃집 알바의 고민”(12. 28. 2014)

서창희 2014. 12. 27. 12:49

고깃집 알바의 고민
(12. 28. 2014)

 

한 청년이 설교를 들었다. 일에 대한 설교였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며, 하나님의 창조성을 담아낸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업무에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야 하며, 그 속에 성경의 가치관이 살아 있어야 한다.” 설교를 듣고 그 청년은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싶었다. 깊은 은혜를 받고 일터에 갔다. 그의 일터는 고깃집 알바였다. 창조적으로 일하기 위해 궁리했다. 그러나 청년은 곧 고민에 빠졌다. “손님의 삼겹살을 구워줄 때 어떻게 성경적 가치관을 담을까?” “여러 번 뒤집지 말고 한번 만 뒤집어서 고기를 굽는 것이 더 성경적인 것일까?” “손님이 상추를 더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님의 탁월함을 담을 수 있을까?” “상추를 가져다 줄 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상추를 가져왔습니다라고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 맞는지 회의가 든다.

 

일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칼뱅주의라는 관점이다. 이 시각에서 하나님이 부르심이라는 것은, 성경적 가치관이 일 속에서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도시가 번영하길 원하시고, 내가 속한 분야에 성경적 가치관을 담은 문화가 융성하기를 원하신다. 기독교적 가치를 담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소설 작품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크리스천의 판결문, 크리스천의 미술작품, 크리스천의 소설은 세상의 것들과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사명자로 일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거룩의 개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관점이 우리 일터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동사무소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일을 크리스천이 해서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과,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은 차이가 없다. 일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인 루터교의 강조점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을 일이 없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가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보살피신다. 나의 일을 통해 인류를 섬기게 하신다. 루터파는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매우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의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까페만 가지 않는다. 전문직만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 낸 작품도 인정한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는 통로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일터로 부르셨다. 그러나 한 쪽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게 조심하라. 문화를 창조하고, 기준을 제시해야 할 때는 마음껏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심으라. 올바른 가치를 작품에 담으라.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그러한 기준들이 별로 필요하지 않는 일들도 있다. 그 때에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통로이다. 내가 성실히 일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일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된다. 오늘 내가 만든 아메리카노가 한 사람의 아침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고깃집 알바로서 깨끗이 닦은 테이블이 다음 손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균형잡힌 성경적 노동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