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교회 칼럼

“가르침의 자리”(8. 16. 2020.)

서창희 2020. 8. 13. 12:17

“가르침의 자리
(8. 16. 2020.)

로마서 2:21-24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너는 앞으로 이런 거 배우지 마라” 그 자녀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 똑같이 담배를 문 아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속으로 후회한다. ‘담배를 끊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때 담배를 끊는다. 인간은 가르치고, 가르침 받는 존재이다. 가르침이 사람을 만든다.

 

“자격도 없는데 내가 누굴 가르치겠는가? 내 삶이나 잘 챙겨야지”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나만 챙길수록 발전이 없다. 성경은 자격 없는 자에게 자꾸 가르침을 맡긴다. 왜? 가르치는 자가 가장 큰 복을 얻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잘 섬긴다 착각하며 가르쳤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로마서 2:21-22) 비난 같지만 이것은 복이다. 유대인들은 뭣도 모르고 사람들을 가르치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내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지 못함을 알고, 가르치다가 내 자신의 회개가 일어난 것이다.

 

내 위선, 무책임, 어리숙함을 벗어나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르침의 복을 받아들이라. 귀찮아도 회사에서 책임지는 위치에 서보라. 후배를 양성해보라. 힘들지만 자녀를 낳아서 길러보라. 아무 것도 몰라도 교사를 맡아보라. 가르치다가 부끄러움, 피곤함, 자격 없음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치게 된다. 회개하게 된다. 결국 나도 변하게 된다. 지키게 된다. 성숙하게 된다. 가르침의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이다.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동시에 가르친 것을 지키는 자이셨다. 지키지 못하는 자인 우리를 가르치신 마지막 방법이 있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통해, 무한한 사랑과 용서까지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내 자신의 삶일지라도 걱정 없다. 지키시며 동시에 가르치신 그분 안에 내 삶이 있기에, 내가 다 지키지 못할지라도, 끝까지 주님이 주신 가르침을 감당할 때, 내 삶과 주변에 구원과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며, 폐쇄적이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삶의 방향을 돌이키라. 하나님의 방법은 가르침에 있다. 밝은 곳으로 나오라. 가르치는 자리로 가라. 그곳이 내가 복을 받는 자리이다.

 

[1]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좋은 가르침, 나쁜 가르침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그 가르침은 나의 지금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2-3] 로마서 2장 21-22절을 읽어봅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가르침의 자리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까?

 

[4-6]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 삶의 영역에서 가르치는 두려움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자격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주님이 주신 기회임을 믿고 다시 감당해야 할 가르침의 자리가 있다면 나누어봅시다.